등산

화강암과 하늘이 빚은 교향곡 월출산

syd0123 2025. 8. 29. 14:11

1. 정상으로 향하는 사자봉과 통천문

구름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능선 산행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사자봉(獅子峰, 668m). '월출산 12' 중 제6경으로, '하늘 문을 지키는 사자의 포효가 우렁차다'는 의미이다. 사자봉을 지나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능선길이 이어지며 체력 소모가 커지지만, 그만큼 시시각각 변하는 월출산을 감상할 수 있다. 천황봉 정상 마지막 관문이 통천문(通天門)이다. '하늘로 통하는 문'으로 거대한 바위틈 사잇길을 통과해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통천문을 지나 100여 미터의 계단을 오르면, 월출산의 최고봉인 천황봉(天皇峰, 809m)에 다다른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막힘없는 조망과 아래로는 영암과 강진의 너른 들판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멀리는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과 남도의 다도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신라 시대부터 나라의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장소이며, 특히 경이로운 일출과 일몰, 그리고 발아래 바다처럼 펼쳐지는 운해(雲海)로 유명하다.

2. 깨달음의 성지, 천년의 유산, 도갑사(道岬寺)는 단순한 사찰을 넘어, 월출산이 품은 역사와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해탈문(解脫門) 문화의 정수를 간직한 박물관이다. 통일신라 말기, 우리나라 풍수지리 사상의 시조로 알려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도선이 태어났을 때 숲속에 버려졌으나 비둘기 떼가 날개로 감싸고 먹이를 물어다 길렀고, 이후 문수사 주지에게 맡겨져 출가한 뒤 옛 문수사 터에 도갑사를 세웠다고 한다.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은 미륵전에 봉안된 고려 시대의 석불로, 도드라진 눈과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에서 강건하고 힘 있는 당대의 조형미를 보여준다.

3 절제의 미학 무위사(無爲寺)는 월출산 남쪽, 강진에 있고, 화려함보다는 고졸(古拙)한 아름다움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살아 숨 쉬는 박물관', '보물 창고' 이며, 국보급 건축과 불화를 통해 조선 초기 불교 예술의 정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때는 23동의 전각과 35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었으며,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위해 수륙재(水陸齋)를 지내던 국가 공인 사찰(수륙사)이기도 했다. 무위사 탐방의 핵심은 조선 건축의 정수 극락보전(極樂寶殿)이며, 1430(세종 12)에 건립된 이 불전은 조선 초기의 건축 양식을 가장 순수하게 간직한 대표적인 목조 건물로, 1962년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 극락보전은 화려한 장식을 배제하고 간결한 맞배지붕과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으로, 소박하면서도 완벽한 비례와 구조로 절제미와 단아함을 보여준다.

4. 월출산은 험준한 바위 봉우리뿐만 아니라 신비로운 전설과 숭고한 신앙의 자취를 보여준다. 실질적인 제2봉인 구정봉(九井峰, 705m)은 정상 부근의 평평한 바위 위에 아홉 개의 우물(웅덩이)이 파여 있는 독특한 지형이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웅덩이들은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졌다. 주능선에서 구정봉으로 가려면 상당한 오르내림 해야 해서 지나치기 쉽지만, 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중심적인 위치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는 장관이며 정신적인 휴식과 여유를 준다. 월출산 12경 중 제7경으로 지정된 이곳은 '하늘의 기운을 담은 아홉샘을 동석(動石)이 지킨다'는 이야기가 있다.

5. 구정봉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약 500m 아래로 향하는 길은 성지를 찾아가는 순례길 같다. 용암사지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국보 제144로 높이 8.6m에 달하는 거대한 불상은 수직의 화강암 절벽에 고부조(高浮彫), 마치 바위 속에서 솟아나는 듯한 입체감과 박진감을 느끼게 한다. 마애(磨崖)'절벽을 갈았다'는 뜻이다.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로 추정되며, 신체 비례가 다소 불균형하지만 당당한 어깨와 풍만한 가슴,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얼굴 표정에서 당대 거석불(巨石佛) 양식의 특징과 장중한 위엄이 느껴진다. 이 마애불이 험준한 산 정상 부근, 특히 서해를 향해 조성된 것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영암지역은 중국과 동남아로 향하는 해상 교역의 중요한 출발지였다. 이처럼 높은 곳에 거대한 불상을 조성한 것은, 험난한 바닷길을 떠나는 뱃사람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영적인 등대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해를 굽어보는 부처의 모습은, 해양 활동과 민중의 신앙이 결합된 강력한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불상 주변에서 1007년에 제작된 '용암사(龍嵒寺)' 명문 기와가 발견되어 이곳에 불상을 모시는 큰 사찰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6. 웅장하고 남성적인 바위 봉우리, 거친 암릉의 월출산이 대조를 이루는 부드럽고 서정적인 공간이 있다. 천황봉과 도갑사를 잇는 능선에 드넓게 펼쳐진 미왕재(未旺) 억새밭은 월출산 12경 중 제9경으로 '갈대꽃 은빛 물결이 미왕재에 흩날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억새가 온통 은빛과 금빛으로 물들어, 바람이 불 때마다 거대한 물결처럼 일렁이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 아름다운 억새 군락은 과거 산불로 인해 숲이 사라진 자리에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

 

산성대 는 전남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를 이루는 월출산에 있는 기암(奇巖)으로 월출산의 주봉인 천황봉 북쪽으로 뻗은 능선 위의 해발 485m 봉우리에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 속한다. 국립공원경관 자원으로는 기암으로 분류 되며, 보통 이 구간을 산성대 능선이라고 부른다. 산성대라는 명칭은 예전에 영암산성(靈巖山城)봉화대가 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월출산 구정봉(해발 734m) 봉우리를 이루는 큰바위얼굴(장군바위)은 높이가 101m로 머리와 이마, , , , 턱수염까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베틀굴()

구정봉(九井峰)을 오르다 보면 맨 먼저 나타나는 곳이 베틀굴이다. 이 굴()은 옛날 임진왜란때 이 근방에 사는 여인들이 난()을 피해 여기에 숨어서 베를 짰다는 전설에서 생겼다. 굴의 깊이는 10m쯤 되는데, 굴속에는 항상 음수(陰水)가 고여 있어 음굴(陰窟) 또는 음혈(音穴)이라 부르기도 하여 이는 굴 내부의 모습이 마치 여성의 국부(局部)와 같은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더구나 이 굴은 천황봉쪽에 있는 남근석(男根石)을 향하고 있는데 이 기묘한 자연의 조화에 월출산의 신비를 더해주고 있다.

월곡리 마애여래 좌상(月谷里 磨崖如來 坐像) 전체 높이 490, 좌상 높이 430. 1987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유형문화유산)이다. 이 마애불은 30m의 높은 바위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불상이다. 머리는 민머리인 소발(素髮)이며, 낮은 육계(肉髻 : 불상의 정수리에 상투처럼 돌기한 혹), 각이 진 얼굴에 눈···입이 다소 형식화된 점과 경직된 몸체는 시대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법의(法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인데 왼쪽 어깨에서 한번 겹쳐서 어깨너머로 넘어갔으며, 오른쪽 어깨는 노출되었고 옷 주름은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며,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와 발은 과장되게 표현되었다. 이처럼 경직된 얼굴 표정과 형식화된 몸체를 묘사한 마애불상은 인근에 있는 월출산 마애불좌상(국보 제144)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커다란 돌 불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어 이 지방 불상양식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조성 연대는 상호와 신체 표현 등을 볼 때 용암사지 마애불보다는 훨씬 늦은 고려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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