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5일(토) 5일차(페루) 잉카제국의 옛수도 쿠스코, 잉카문명 4대문화유적
8시 호텔출발-리마출발 1시간비행-쿠스코도착-삭사이와만, 켄코, 푸카푸카라, 탐보마차이_산토도밍고성당-아르마스광장-12각돌-우루밤바 이동(1시간30분)-숙소
삭사이와만(Sacsayhuamán)은 3,700m, 쿠스코 북쪽 언덕에 위치한 거대한 성벽으로, 쿠스코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이다. 잉카제국의 군사적 방어시설일 뿐만 아니라 제례와 의식을 치르는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잉카의 주요 축제인 인티 라이미(Inti Raymi) 축제가 열렸다. 잉카인들은 독수리와 퓨마, 뱀이 각각 하늘과 땅, 지하를 지배한다고 믿었다. 퓨마를 땅의 신으로 여겨 코스코 도시를 퓨마모양으로 만들고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삭사이와만을 만들고, 쿠스코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요새이자 감독의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백 톤에 이르는 거대한 거석을 이용하였고, 가장 큰 것은 높이 9m, 무게가 350톤에 달한다고 하며, 지그재그 모양으로 3단으로 건축되어 있는데 길이가 360m이다. 잉카인들이 스페인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운 요새이다. 밤에 싸우지 않는 잉카인의 전통을 이용하여 스페인군이 밤에 삭사이와만에 침입해 잉카의 군대를 몰살했다 한다.
삭사이와만은 15세기 후반 잉카의 정복왕 파차쿠텍(Pachacuteq) 때부터 건설하기 시작해 그의 후계자인 투팍 유팡키(Tupac Yupanqui) 때 완성되었다. 스페인 정복 후 대성당이라든지 총독관저 같은 건축물을 지을 때 이곳의 돌들을 가져가 사용했다.
잉카는 콜럼버스이전 아메리카에 존재하던 가장 큰 제국이었다. 케추아어로 타완틴수유라 불렀는데 ‘사방(네지역)을 다스리는 제국’이라고 한다. 제국의 군주를 사파 잉카(Sapa Inca: 케추아어로 ‘유일한 왕’이라는 뜻)라고 불렀는데 이를 따서 잉카제국이라고 이름 붙였다. 잉카는 13세기 초 페루의 한 고원에서 기원했는데 1438년 즉위한 파차쿠티와 그의 아들 유팡키 황제때 본격적인 영토 확장이 시작되었다. 1527년 무렵 잉카제국은 지금의 에콰도르, 페루, 남서 중앙 페루, 북서 아르헨티나, 북부 칠레, 콜롬비아 남부지역 등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을 차지했고 인구는 900만명에 달했다.
삭사이와망옆 크리스토 블랑코 전망대 (Mirador desde el Cristo Blanco)를 가는 오솔길이 보인다. 예수상은 멀리서 보기만 했는데 이 예수상은 1945년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난민 수용을 허가한 쿠스코에 감사의 뜻을 표하여 선물한 것으로,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보다 크기는 작지만 똑같은 모습으로 쿠스코를 내려다 보고 있다.
잉카제국의 제례장이었던 켄코(Q’enqo) 입구
켄코는 삭사이와만 옆, 쿠스코에서 가장 높은 3,800m지점에 있으며, 삭사이와만이 돌을 쌓아 올린 것이라면 켄코는 돌을 깎아 만든 것이다. 켄코(Qenqo)란 케추아어로 지그재그, 즉 미로라는 의미이다. 신에게 제물을 바친 후 미래의 길흉을 점쳤던 곳으로 퓨마가 부조된 6m의 거석을 중심으로 반원형이다. 산 제물의 피를 흘려 점을 쳤다고 하며 지그재그 홈이 있어 바위 전체가 유물이다. 안쪽은 반 동굴로 되어 있고, 황제가 앉았던 옥좌와 잘 깎은 제단이 있고, 성물인 우아카를 전시하고 야마를 잡아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켄코 유적을 보고 '붉은 요새' 푸카푸카라 유적지를 지나간다. 붉은 요새 라는 뜻의 푸카푸카라(Pukapukara)는 쿠스코 북쪽을 통행하는 사람들을 검문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성스러운 샘, 탐보마차이(Tambomachay) 3,765m
쿠스코 시내의 근교에 있는 탐보마차이는 홍수 때나 가뭄 때나 일정한 양의 물이 솟아 “성스러운 샘”이라 불리고 있다. 잉카인들이 정교하게 돌을 쌓아 만든 암벽의 수로에서 두 줄기의 물이 흘러내리는데,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목욕했던 성스러운 곳으로 추측된다. 물은 인간의 생명의 원천이며, 농사를 위해서도 물 관리가 가장 중요했다. 고대나 중세시대, 심지어 근대 이후에도 통치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물 관리였다.
코리칸차 안의 중앙광장
코리칸차 태양의 신전은 잉카제국 시대의 가장 중요한 성소이다. 태양신 인티(Inti)에게 제물을 봉헌한 ‘태양의 신전’이었던 것이다. 잉카인은 태양신을 최고의 신으로 숭배했다. 태양신을 섬기던 코리칸차는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가장 신성한 장소였다.
바로크 양식과 스페인 식민지 양식이 혼합된 3개의 본당으로 구성된 현재의 산토 도밍고 성당과 수녀원 건물.
본당을 위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며, 신과 종교를 명분으로 내세워 파괴와 약탈을 하였던 스페인 침략자들의 대표적인 증거가 태양의 신전과 산토 도밍고 성당이다. 피사로와 스페인 군대가 처음 쿠스코에 왔을 때 태양이 반사되어 빛나는 황금의 신전을 보고 감탄을 했다고한다. 벽은 두꺼운 순금판이 붙어 있었고, 건물 안에는 잉카 제국의 곳곳에서 가져온 황금으로 만들어진 보물(순금으로 빚은 라마와 알파카 등 동물상, 금으로 만든 옥수수와 감자, 그리고 꽃과 식물 등)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후안 피사로는 코리칸차의 황금을 비롯한 모든 보물들을 모두 녹여 금괴로 만들어 스페인 본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신전을 부수고 세운 것이 산토 도밍고 성당인데, 너무 견고히 만들어져 부수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태양의 신전은 기단을 남기고 그 위에 성당이 지어졌다. 1950년 지진이 일어났을 때 산토 도밍고 성당은 무너졌지만 돌담은 견실했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안에는 역시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인 여러 방들과 장식대가 있으며 안뜰에는 축제 때 술로 가득 채워졌다는 우물이 남아있다. 웅장한 바로크 양식에 내부는 아름다운 제단으로 꾸며져 있다. 현재는 이곳 일부가 코리칸차 주변에서 발견된 미라, 황금 유물, 문서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황금판과 도자기, 당시의 천문관측을 알 수 있는 유물 등이 남아 있어 잉카인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12각돌 : 쿠스코에서 가장 붐비는 골목인 로레토 거리로 들어서면 잉카석조건축의 진수를 보여주는 12각돌을 만나게 된다. 정교하게 맞물려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쌓아 올려진 돌담에 감탄하게 된다. 앞쪽은 기념품 가게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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