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페인 그라나다

syd0123 2026. 3. 20. 13:12

Ⅳ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

✔️ 그라나다(Granada) 천상의 궁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 주의 주도. 면적: 88.02시에라네바다 산맥 북서쪽 사면에 헤닐 강을 끼고 발달해 있으며 고도는 해발 689이다. 다로 강은 운하화했고 시내를 흐르는 부분은 거의 다 복개되어 있다. 도시의 이름은 '석류'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그라나다'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지방에는 석류가 무척 많고 시의 문장에도 석류가 그려져 있다. 무어인이 세운 그라나다 왕국의 수도로 스페인에서 무어인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다가 14921월 가톨릭계 군주인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라 1세에게 함락되었다. 시의 중앙에는 고딕식 건물인 산타마리아데라엔카르나시온 대성당(1523~1703)이 있고, 페르난도와 이사벨라의 납골당이 있는 왕실 예배당 카피야레알이 있다. 시 북동쪽에는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알바이신 지구가 있는데 남쪽은 다로 강과 닿아 있고 강 건너편 언덕 위에는 무어인들의 궁전인 알함브라 궁전과 그 궁전을 지키는 알카사바 요새, 그리고 술탄들의 여름 별궁이었던 헤네랄리페가 있다. 시의 남쪽은 행정과 상업지구이며, 서쪽은 근대적인 주택가이다. 이 도시는 대주교가 관할하는 교구이며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 및 신고전주의 양식의 아름다운 교회와 수녀원·수도원·병원·궁전·대저택들이 있다. 시내 중심에 있는 대성당은 벽옥과 색깔있는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고, 내부에는 알론소 카노의 훌륭한 그림들과 조각품이 많이 있다. 카르투하 수도원(1516)이 도시의 북쪽에 있다. 알함브라 궁전 이외에 무어인이 지은 오래된 건물로는 콰르토레알데 산토도밍고라고 부르는 13세기에 지은 저택과 14세기에 지은 무어인 왕비들의 궁전인 알카사르 헤닐이 있다. 농산물 거래가 활발하고 리큐어 주(), 비누, 종이, 올이 성긴 린네르와 모직물을 제조하며, 음악과 춤의 국제 페스티벌이 열린다.

그라나다 왕국은 지금의 그라나다·말라가·알메리아 주로 이루어져 있었다. 14세기 그라나다왕국은 예술과 과학이 번성했고 학교와 사원 · 공중목욕탕이 즐비했으며 화려한 이슬람문화를 꽃피웠다. 왕국의 무하마드 1세가 나스르 왕조를 열었고 1246년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에게 승인을 받았다. 이베리아 반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이슬람왕국이었으나 그리스도교 왕국의 공격을 받아 1492년에 사라졌다. 군부 지지에 바탕을 둔 절대주의 정부형태를 발전시켰고 통치자들은 지브롤터 해협에 관심을 쏟아 1세기 동안 해협을 손에 넣기 위해 애썼지만 리오살라도전투(1340)에서 해협 문제가 카스티야에 유리하도록 해결된 뒤 그라나다는 고립정책을 폈고,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국경을 강화했다. 이 무렵 유수프 1(1333~54 재위)와 무하마드 5세는 알함브라 궁전을 세웠다. 14세기 후반 카스티야 왕국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무하마드 5세와 7(1392~1408 재위)는 반격에 나서서 과달키비르 강변에 있는 도시들과 알헤시라스를 공격했지만, 1407년부터 카스티야는 이베리아 반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 정복을 시작했다. 대규모 전쟁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15세기말까지 계속되었고 그라나다 왕국은 내란으로 분열되었으며 그리스도교 왕국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공격하였다. 마지막 왕 보아브딜(무하마드 111482~92 재위)149212일 마지막 남은 요새인 그라나다 시를 넘겨주었다.

✔️ 알함브라궁전 Alhambra 타레가가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란 곡으로 기타 연주한 이 궁전은 서유럽에 마지막 남은 이슬람 문화의 흔적으로 진주궁전, 낙원의 초상화라고 한다. 1492년 에스파냐 역사에서 매우 기념비적인 위업 두 가지가 달성되었다.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를 지원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데 일조했고 에스파냐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왕국을 점령하여 오랜 염원이던 통일을 이루었다. 그라나다왕국은 에스파냐의 기독교 군주인 페르디난도와 여왕 이사벨라에게 항복함으로써 700년 이상 계속된 이슬람의 역사를 마감했다. 알함브라는 붉은색(alHamra)이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했는데 성벽을 지을 때 붉은색 점토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집시의 피를 이어받은 땅그라나다 7~15세기 말 에스파냐 지역에서 인도 서부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무대로 여러 이슬람 왕조가 등장했다 사라졌다. 누에바광장에서 언덕길을 올라가면 그라나다 문을 지나 궁전 최초의 문인 재판의 문(Puerta de Justicia, 정의의 문)이 나타난다. 말굽 모양의 위쪽 아치에는 코란 5계명을 나타내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조각되어 있고, 이곳을 지나면 알히베스광장이 나오며 우측에 르네상스 양식의 카를 5세 궁전, 정면에 왕궁의 입구가 있다. ‘오직 한 분, 신만이 승리자이다라고 새겨져 있는 포도주의 문을 지나면 알카사바 군사요새의 입구가 나온다. 알카사바는 9~13세기에 건설되었으며 이 요새에서의 조망은 알람브라궁전의 화려함을 예고한다.

그라나다 문 재판의 문 카를5세 궁전(Palacio de Carlos V) 포도주의 문 알카사바(Alcazaba) 코마레스 탑 사자궁전(Patio de los Leones) 산타마리아성당 헤네랄리페(Generalife)궁전

알함브라궁전에는 남부 유럽적이고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두 개의 커다란 정원이 있고 그 주변에 많은 방이 있다. 궁전에 들어서면 먼저 아라야네스 정원이며 그라나다 정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아라야네스 정원에 면한 옛 성채인 코마레스탑 내부에 살라 데 로스 엠바야도레스(대사의 홀) 1334~1354년에 건설되었는데 방에 들어서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그림들이 숲을 이룬다. 건물 내부를 장식하는 장식 띠들 사이에 있는 하얀 대리석에는 알라의 이름과 코란의 구절이 수천 번 새겨져 있고, 천장은 모가라베스라고 하는 종유석 장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이슬람의 우주철학에 나오는 일곱 개의 천국을 묘사했다고 한다. 대사의 홀은 1492년 페르디난도가 침입했을때 왕국을 양도하는 문제를 놓고 마지막 회의를 했던 곳이다. 아라야네스 정원에서 왼쪽으로 가면 유명한 사자궁전이 나온다. 대리석 기둥 124개로 받친 아케이드로 사방이 둘러져 있는 분수에는 설화석고로 제작한 수반이 있고 12마리 사자들의 입을 통해 물이 나온다. 유대인이 만들어 술탄에게 바친 이 사자상은 당시 그라나다에 살던 유대인 12 부족을 나타낸다. 술탄은 정원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방에 32명의 첩을 거느리고 살았는데 왕 이외의 남성은 출입금지였으며 2층에는 후궁들이 살았다. 사자궁전 양옆으로 알함브라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이 두 개 있는데 바닥에 깐 두 개의 대리석 판에서 이름이 유래한 살라 데 라스 도스 에르마나스(Sala de las dos Hermanas, 두 자매의 방)살라 데 로스 아벤세라헤스(Sala de los Abencerrages)이다. 두 방 모두 뛰어난 솜씨로 채색하고 유약을 바른 채색타일로 벽을 마감했다. 특히 살라 데 로스 아벤세라헤스의 스투코 천장은 종유석이 5,000개의 벽감을 형성해 마치 벌집처럼 보이며, 벌집 모양을 한 석고 천장의 벌집 속에 들어찬 방의 수가 모두 4,400개라고 한다. 이 천장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반사된 자수정은 종유석 동굴 천장을 쳐다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종려나무를 연상케 하는 가는 기둥, 정원을 감싸고 있는 아늑한 회랑, 종유석 모양의 수많은 아치 등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알함브라궁전(· 천장 · 바닥)의 자재로는 목재 · 벽돌 · 석고 · 갈색타일을 사용했다. 석각은 매우 드물게 사용했고 대리석은 포장 · 기둥 · 대접 받침에만 사용했다. 특히 살라 데 로스 엠바야도레스의 천장은 나무의 여러 가지 색채의 타일이 실내와 외관의 넓은 공간을 채워 빛의 반사에 의해 강렬한 색조감을 느끼게 한다. 특별한 조각이 없이 이들 재료만으로 화려함과 우아함을 표현한 기술은 당대의 건축기술이 매우 발달했음을 보여준다.

알함브라궁전은 공식 관저였고 '천국의 정원'이란 뜻을 가진 왕의 휴식처인 헤네랄리페 정원은 북쪽의 구릉 위에 왕족들이 쉬는 여름 별장용이었다. 무하마드 2(Muhammad II)가 지었는데 이슬람식 정원의 전형적 특징(시골 별장)이다. 이곳은 모두 파괴되어 두 개의 소궁전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넓은 정원이 잘 정돈돼 있다. 이 안나트 알 아리프(우아한 천국의 정원)은 헤네랄리페 안에서 가장 아름답다.

니콜라스전망대(Mirador de San Nicolas)는 알바이신(Albaicin) 언덕 끝에 위치하며 알바이신지구는 옛이슬람교도들의 거주지로 하얀벽돌과 좁은 골목이 운치있는 길을 걸어서 올라가는데 알함브라 궁전과 그 뒤에 시에라 네바다 산맥, 시내 경관까지 한 눈에 조망이 가능하며 일몰과 야경을 보는 곳이다.

사크라몬테(Sacromonte 신성한산)는 알바이신으로 가는 동쪽 일대의 언덕으로, 1950년대 소수민족들이 동굴을 이용해 집을 지었고 지금도 집시가 많이 산다. 가톨릭 왕들이 그라나다를 공략 했을때 집시들이 군마를 조달하고 정찰 역할을 맡았다.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이사벨 여왕은 집시들에게 사크라몬테에서의 주거지와 세습적인 면세 특권을 주었고, 이들은 횡혈식 주거지를 형성하고 살기 시작했다.

 

플라멩코 음악과 춤은 풍요롭고 다양한 문화의 결과물로, 안달루시아 지역을 점령했던 무어인들은 아랍 음악의 흔적을 안달루시아에 남겨 놓았다. 집시들은 인도 기원의 예술적인 요소를 가지고 왔고 타고난 방랑 문화와 음악적 재능으로 플라멩코가 생겨났다. 노래를 만들고 여기에 손과 발로 만들어내는 리듬을 더했다. 화려하고 즉흥적이며 기교적 성향의 집시음악은 무어족의 문화에 유대, 가톨릭 문화, 토착 음악이 융합하며 수백 년에 걸쳐 안달루시아의 음악으로 정착된다. 1492년 가톨릭 왕들이 알함브라를 공격하겠다고 전하자, 마지막 왕인 보압딜왕은 싸우기를 포기하고 궁을 떠났고, 눈물을 흘리며 넘었다는 알함브라 맞은편의 작은 언덕을 '무어인의 한숨'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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