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바르셀로나⇒사그라다파밀리아성당⇒구엘공원⇒카사바트요⇒카사밀라
✅ 바르셀로나 Barcelona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주요항구이며 상업 중심지로 문화사업,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고, 비옥한 평야지대와 산으로 둘러싸여 기후가 온화하고 쾌적하다. 제조업·조선업·관광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동차·중장비기계·화학제품·섬유 공업은 카탈루냐 지방 산업 활동의 중심이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 프랑스로 이어지는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고, 프라트 국제공항이 있다. 바르셀로나 항은 17세기에 건설되었다. 프랑스 국경에서 남쪽으로 150㎞에 있는 항구도시로 지중해에 면한 스페인의 주요항구이며 상업 중심지로 독특한 특성, 문화사업,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다.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로 이곳에 있는 증권거래소에서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100개가 넘는 정기선이 바르셀로나와 세계의 주요항구를 연결하고 있다. 이 도시의 가장 오래된 구역은 작은 몬테타베르 언덕 위에 있는데, 로마 시대의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1289년에 시작해 15세기말에 완공된 고딕 양식의 대성당에는 6세기에 지은 바실리카가 있으며 산타마리아델마르 교회를 비롯한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다. 왕궁과 주교관은 바르셀로나 시와 아라곤 왕국의 기록보관소로 사용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기리는 60m 높이의 기념탑과 1882년에 착공한 템플로 사그라다파밀리아(성가족교회) 등은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19세기 말의 바르셀로나에는 도시 재정비 바람이 불었는데, 특히 고딕 지구(대성당 등이 있는 구시가지)와 그라시아 지구 사이의 낙후된 지역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에이샴플레(Eixample)라고 하는 지구인데, 정사각형 블록으로 구역을 나누고 차도만큼이나 넓은 인도를 만들고, 블록의 네 귀퉁이를 대각선으로 깎아 교차로를 넓게 만들어서 차량을 운행하는데 편리함과 안전함을 추구했다. 이런 블록을 ‘만사나(manzana)’라고 부른다. 만사나의 내부는 ㅁ자로 비어 있어 정원이 있기도 하고, 다른 편의시설이 있다. 거리 바깥쪽면에는 빨래를 넌다거나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간판이나 표지판도 아무렇게나 달 수 없다. 빨래나 실외기 등은 만사나 내부의 베란다에만 놓을 수 있다. 도시교통은 지하철·지하도·버스·케이블카·간선도로를 비롯한 고속 여객수송망으로 편리하게 이루어진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교외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 프랑스로 이어지는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고, 프라트 국제공항이 있다. 바르셀로나 항은 17세기에 건설되었으며, 1992년 제25회 올림픽 대회가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성가족 성당, 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 가우디 생전 마지막 작품 에이샴플레 · 그라시아 지구(Eixample & Gràcia) ‘성가족’이라는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 마리아, 요셉을 뜻한다.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큰 감명을 받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한 출판업자가 바르셀로나만의 대성당을 짓자는 운동을 벌여 시민 모금이 시작되었다. 1882년 가우디의 스승이었던 비야르(F. de P. Villar)가 좋은 뜻에 동참하여 무보수로 성당 건설을 시작했지만 무조건 싸게 지으려고만 하는 교구에 질려 1년 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가우디를 후임자로 추천하였다. 젊은 건축가에게 맡기면 공사비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교구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가우디가 공사를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는데, 비야르가 설계한 초기의 디자인을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면서 죽는 날까지 43년간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쳤다. 공사 현장에서 직접 인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설계도를 그려 나갔고, 마지막 10년 동안은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함께 숙식하면서까지 성당 건축에 몰입했다. 그러나 1926년 불의의 사고로 그는 결국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자신이 지은 이 성당의 지하 납골묘에 안장되었다. 사후, 스페인 내전 과정에서 설계 도면이 불에 타면서 공사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의 정신을 계승한 후배 건축가들의 기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성당의 건축은 계속되었다. 오로지 기부금과 입장료 수입만으로 공사 비용을 충당하고 있어 착공된 지 130년이 넘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총 3개의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가 있는데, 각각 ‘예수 탄생’, ‘예수 수난’, ‘예수 영광’을 주제로 설계되었고, 이 중 ‘예수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생전에 직접 완성시켰다. ‘예수 수난’ 파사드는 1976년에 완공되었고, 마지막 남은 ‘예수 영광’은 진행중이다. 3개의 파사드 위에는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이 세워지고, 중앙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탑이 세워진다. 2010년에야 공개된 대성당 안은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것처럼 나무와 꽃들을 형상화였고,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창을 통과한 빛이 하얀 벽면을 물들이고 흰 기둥의 색을 시시각각 변화시킨다. 특히, 서쪽 벽면의 아름다운 색상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성당의 천장에 비스듬히 비치는 늦은 오후에 볼 수 있다. 기둥을 둘러싸고 있는 대리석은 세계에서 제일 비싼 이태리산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만 공사를 하므로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가우디 사후 100주년 기념인 2026년 완공이 목표이지만, 경제위기 속에서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서쪽 하늘에 떠 있는 햇빛을 바로 받아 성당이 하얗게 보이는데 양지와 음지의 차이와 빛의 영향이 사물의 아름다움을 좌우하는 직접적인 요소가 된다. 종탑은 걷거나 유료 엘리베이터로 오를 수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 풍경도 인상적이며, 날이 좋으면 먼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예수 수난’ 파사드 화장실 방향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건축 과정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 있다.














































✅ 구엘공원(Parc Guell)
지하철 3호선 발카르카(Vallcarca)역 또는 리셉스(Lesseps)역 하차 후 도보.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상상력과 창의적인 세계, 자연과 인간을 배려한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까탈루나의 구엘 백작(1846~1918)은 쿠바에서 노예장사로 많은 돈을 모은 대부호였고, 공원부지는 구엘의 소유였다. 가우디가 1878년 파리 국제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스페인 전시관 진열장 디자인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박람회를 방문한 구엘 백작이 그의 천재성, 예술성, 독창성에 큰 관심을 끌게 되었고, 자신의 저택과 공원 등 바르셀로나 내 여러 건축물의 설계를 가우디에게 의뢰하였다. 가우디에게 독창적이라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구엘은 가우디에게 영국의 전원도시를 모델로 하고 그리스의 팔라소스 산과 같은 신전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구엘과 가우디는 고급 주택 60호 이상을 지어 분양하려고 하였는데, 돌도 많고 경사진 비탈길이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지형적 한계와 자금난 때문에 14년이라는 긴 공사 기간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건물과 커다란 광장, 벤치만 남기고 미완성으로 끝났다. 구엘 사후 1922년 바르셀로나시가 사들여 다음 해 시영공원으로 재탄생시켰다. 가우디와 구엘의 본래 계획은 실패했지만 가우디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되었고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예술작품 같은 공원이 되었다. 구엘공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철저히 계획한 인공미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며, 대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색과 곡선의 아름다운 건물들, 화려하고 신비한 모자이크 장식의 타일, 땅을 고르는 것도 반대한 만큼 자연스럽게 터진 길과 인공 석굴 등 가우디답다. 야자수 같은 나무와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타일벤치가 장관을 이루는 광장은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며, 하나하나 타일을 붙여 만든 벤치는 같은 패턴이 하나도 없이 계획성 있게 색의 조화를 고려해 만들어졌다. 이 광장을 그리스 신전과 같은 느낌을 주도록 86개의 견고한 도리아식 기둥들이 광장을 받치도록 설계하였고, 천장에도 깨진 타일 조각과 버려진 술병 등을 재활용하였고, 주민들의 '시장(市場)'으로서의 기능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공간으로 다 주실(sala hipostila 기둥을 많이 세운 홀)이라고 불렀다. 정문 쪽에 금방이라도 단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 과자집 같은 건물 두 채가 있는데 뾰족한 지붕과 갈색과 흰색이 조화로운 기념품샵이다. 구엘공원의 마스코트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하수의 수호신 퓨톤분수 앞에는 사진 촬영을 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왼쪽으로 가면 비스듬하게 버티고 있는 돌기둥이 있는데 천정과 곡선을 이루며 축대 모양의 벽과 함께 일체감을 주면서 길게 터널 같이 이어져 있다. 빛과 돌의 조화가 이루어 낸 조형미를 독창성을 표현했다.













































✅ 〈카사 바트요〉 Casa Batlló
바르셀로나에서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852-1926)의 명소 중 하나다. 반듯하고 넓은 그라시아 산책로에 있으며, 구불구불하고 알록달록한 건물 외관도 멋지지만 52살 때의 가우디의 솜씨는 실내에서도 간들거리는 봄바람처럼 섬세하다. 1870년대에 지어진 밋밋한 건물이었는데, 조세프 바트요(Josep Batlló) 부부가 1900년에 구입하여 가우디에게 재건축을 맡겼다. 어떤 곳에도 없는 새로운 건물을 원했고 새로 짓기를 바랐으나 리모델링으로 충분하다고 설득하여 1904년부터 위에서부터 아래로 리모델링을 해서 꼭대기에 한 층이 추가되었고, 지하실도 생겼다. 실외는 물론 실내 벽까지 새로 만들면서 모든 공간에서 직선을 없앴다. 1906년에 완성되었는데, 이 구역을 ‘불화의 블록’ 또는 ‘불화의 사과’ ‘만사나 데라 디스코르디아(Manzana de la Discordia)’라고도 불렀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의 카사 예오 모레라(Casa Lleó Morera), 푸이그의 카사 아마트예르(Casa Amatller), 엔릭 사니에르 이 비야베키아의 카사 뮐레라스 등이 그라시아 거리에서 경쟁하듯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 모습이 마치 그리스 로마신화의 헤라와 아테나와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황금 사과를 놓고 싸우는 것과 흡사하다해서 부른 것이다. 스페인어로 ‘만사나(Manzana)’는 사과를 뜻하기도 하고 블록을 뜻하기도 하는 동음이의어다. 가우디의 설계대로 집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건물 정면에 해골과 뼈들이 등장하고 지붕에는 용의 등뼈와 비늘이 입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따뜻한 집이 아니라 귀신이나 동물이 사는 무서운 공동묘지 같았다. 사람들은 이 집을 ‘뼈의 집’, ‘해골의 집’, ‘가면의 집’, ‘하품의 집’, ‘용의 집’ 등으로 불렀다. 바트요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집을 원하기는 했지만, 이건 특별한 정도가 아니라 괴이했다. 특히 바트요 부인 고도의 반대가 심했다. 그녀는 가우디의 건축은 물론 그가 직접 만든 가구와 소품까지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가우디로 인해 바트요와 고도는 부부싸움을 자주 했다.
바다에서 나온 용이 지붕 위에 웅크리고 있는 집 카사바트요의 옥상은 땅을 뚫고 솟아난 야생 버섯을 떠올리는 굴뚝 27개가 네 그룹이다. 각양각색 유리 조각과 꽃무늬 타일 조각 모자이크로 덮인 약 6m 높이의 나선형 굴뚝은 꼭대기에 모자처럼 원뿔형 뚜껑이 올려져 있다. 지붕의 용의 등에는 등뼈와 비늘이 보인다. 굴뚝은 조르디가 용을 찌른 창이다.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작은 발코니들의 쇠창살은 용이 먹어 치운 먹이(동물 또는 사람)의 해골이다. 물결치는 듯 구불거리는 외벽은 용이 살던 연못의 물 표면이다. 가우디가 카사 바트요에 입힌 상징과 은유는 카탈루냐 수호성인인 성 조르디 전설이다. 탑에는 나선형으로 ‘JHS’, ‘M’, ‘JHP’라는 모노그램이 붙어 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이름을 새긴 것이다. 마리아는 공작 왕관을 쓴 ‘M’으로 표기했다.














✅ 도심 속으로 옮겨 놓은 몬세라트와 지중해처럼 일렁이는 뼈대 '카사 밀라'는 가우디가 에이샴플라에 지은 마지막 민간 건축물이다. 다락방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모두 여섯 개다. 밖에서 보면 오목한 부분과 볼록한 부분이 곡선으로 교차하는 원뿔 모양의 탑이다. 가우디 건축의 꽃 혹은 화룡점정이 옥상이라면 그중 백미는 카사 밀라다. 신비와 황홀히 온몸을 감싼다.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명산에 오른 것 같기도 하고, 머나먼 우주의 다른 별로 날아온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모습을 닮은 굴뚝과 환기탑들은 바르셀로나를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특히 황톳빛 굴뚝은 투구를 쓴 로마 병정 또는 우주인처럼 보인다. 카사 밀라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이다. 가우디는 왜 그렇게 옥상과 굴뚝에 마음을 쏟았을까? 옥상은 건물의 꼭대기이며 사람의 손이 닿는 마지막 부분이다. 그 위로는 바람과 햇빛과 하늘 즉 자연이 있고 자연은 곧 신이다. 인간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이 만나는 곳, 인간의 손과 신의 손이 마주치는 곳이 옥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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